[꽃친동네 캠페인 특별기획 칼럼 #3]
❝쉼은 삶이다. (갭이어를 보낸 청소년들의 이야기)❞
'쓸데 없는 짓'의 귀환
그렇다면 실제로 갭이어를 보내는 청소년들은 무엇을 경험하는지 매우 궁금하시죠? 갭이어 경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요. 이번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은 자아정체성의 형성이라고 하죠.* 여러분 모두 청소년기에 문득 찾아온 ‘나는 대체 누구지?’라는 질문을 마주한 경험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학 문제 풀듯 정답을 찾을 수도 없고, 누군가 나에게 알려줄 수도 없습니다. 그저 이 질문을 붙들고 이리 저리 방황하며 관심과 흥미, 친구들과의 어울림, 때로는 사랑의 아픔 속에 머물면서 ‘나’라는 사람의 고유함을 쌓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입니다.
꽃친에서 이야기하는 갭이어는 어찌보면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긴 일생 중에서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인간으로서의 성장 과정을 충분히 겪을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주자는 것입니다. 숙제, 학원, 시험 공부에 자리를 빼앗긴 ‘쓸데 없는 생각(짓)’에게 자기 자리를 찾아주자는 것이죠.
그리고 일주일에 두차례 함께 만나는 날에는 그런 ‘쓸데 없는 생각(짓)’에 영양분을 조금 더 공급하고, 살짝 부추겨주는 활동에 'R.E.S.T. 프로그램'이라는 멋드러진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R.E.S.T 프로그램
첫 번째 R은 Recreat, 창조적인 놀이입니다. 청소년들이 논다고요? 네!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도 놀이를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몸 게임, 보드게임, 팀 게임, 운동, 소풍, 노래 부르기, 수다 떨기 등등 놀 수 있는 방법도 얼마나 다양한 지 모릅니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여행입니다. 꽃친에서는 1년에 4~5번 정도 여행을 갑니다. 가까운 곳으로 2박 3일 떠나는 국내여행에서 부터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캠핑, 그리고 아이들이 목적지 정하기부터 준비물 챙기기까지 모두 준비하는 해외여행 등 여행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왜 여행이 최고의 놀이일까요? 새로운 곳에 가서 친구들과 떠들며 길을 걷고, 멋진 풍경과 새로운 문화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것을 먹고, 밤새 마피아 게임도 하고, 자려고 눕고 나서는 비밀 이야기도 나누거든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긴 시간이까 최고의 놀이지요.
두 번째 E는 Engage, 사귐입니다. 다양한 대화의 시간, 봉사활동, 제3의 어른들과의 사귐, 친구네집 놀러가기를 통해 사귑니다. 꽃친에서는 정말 많은 대화를 합니다. 다같이, 쌤들과, 친구들끼리, 게임으로, 1:1로 등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요.
너는 뭘 좋아하니? 요즘 덕질하는 건 뭐야? 요즘은 무슨 생각하면서 지내? 너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지금 마음이 어때? 이런 질문들을 서로 주고 받고 곰곰이 생각해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중에 나도 몰랐던 내 마음, 내 관심, 내 가치관 등을 알게 되고 미처 알지 못했던 친구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와의 사귐 그리고 타인과의 사귐입니다.
세 번째 S는 Seek, 탐구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이 세계를 향한 적극적인 탐구의 경험을 제공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어른들을 만나서 일터를 방문하고, 인터뷰를 통해 일의 세계를 이해합니다. 단순히 그 일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경험이기에 그 사람의 분위기와 태도 또한 배우게 되지요.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봅니다. 생태적인 삶, 참여 민주주의, 불평등 문제, 약자들의 인권, 일상 속 평화의 실천 등의 주제를 책을 통해, 꽃친쌤을 통해, 인터넷의 다양한 미디어 자료를 통해, 현장 방문을 통해, 때로는 꽃친 청소년들끼리 서로 가르치며 배웁니다.
네 번째 T는 Think, 성찰입니다.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하더라도 그것을 성찰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내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꽃친의 활동은 기획-수행-성찰의 사이클을 따릅니다. 다양한 활동이 끝날 때마다 소감을 나누고 기록하기도 하고, 한달에 한 번씩 ‘꽃다운 대화’라는 이름으로 지난 한달간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고 깨닫게 되었는지 점검합니다.
정말 알찬 방학이지요? 그러면 정작 쉴 시간은 별로 없는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REST 프로그램은 쿠키에 콕콕 박힌 초코칩 같은 포인트일 뿐, 갭이어의 기본 바탕은 멍 때리는 시간이랍니다.
이슬이와 우준이 이야기
이제 꽃친을 경험한 청소년들, 즉 꽃치너들에게 REST프로그램이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소개해드릴게요. 먼저 이슬이(가명)가 생각나네요. 이슬이는 낙관적이고 원만한 성격으로 행복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느긋하고 순진하며 사람을 정성껏 대하는 이슬이의 특성이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바람에 자기다움을 애써 감추고 살아야 했어요. 노는 애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고 공부는 관심 밖이었죠. 자기다움을 상실하면서 자존감도 낮아지고 생기가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중학교를 꾸역꾸역 졸업한 이슬이가 부모님의 권유로 꽃친을 만났습니다.
1년의 쉼의 시간을 얻게 된 이슬이는 그토록 원하던 잠도 충분히 자고, 좋아하는 공연과 영화도 열심히 보러 다니고, 중국어와 춤도 배웠어요. 이슬이가 꽃친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으로 꼽는 홍콩 여행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중국어 실력이 빛을 발했죠. 꽃친에서 다양한 자기 이해와 표현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자신의 독특함이 친구들과 쌤들에게 편견 없이 수용되었던 경험이 가장 결정적으로 이슬이의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진로에 대한 힌트를 얻은 이슬이는 주도적으로 영상과학고등학교를 선택해 진학했고, 고등학교 생활은 ‘진짜 진짜’ 재밌고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영화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며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있답니다.
우준이(가명)는 다소 산만하고 장난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ADHD 치료를 권유 받았으나 실제 검사 결과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지나치게 내향적이라고 생각하는 우준이가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처음엔 걱정을 했었답니다. 하지만 우준이는 관계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만 통과한다면 듣도 보도 못한 매력과 사랑스러움을 끝없이 보여줄 수 있는 친구였습니다. 꽃친이라는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친구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갈등까지도 세심하게 풀어나가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친구들과 어우러지는 찐 행복을 맛볼 수 있었죠. 꽃친이 끝나고 우준이는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때와 톡투유(공감적 그룹대화)를 할 때가 나에게 가장 편안한 쉼이었어요.”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부모님도 꽃친에서의 우준이를 보시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유쾌하고 활동적인 아이인 줄 몰랐다’며 ‘그동안 숨겨져 있던 우준이의 자기다움이 발현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1년의 행복한 방학을 마치고 우준이가 친구들과 헤어져서 힘들어하지 않았냐고요? 물론 무척 아쉬워했지만, 꽃친에서 얻은 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현재 즐거운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쉼'은 '삶'이다.
열여섯, 열일곱.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 같은 시기에 꽃친의 문을 두드리는 청소년들은 저마다 다른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이나 갭이어를 보내는 모습도 다양하고 갭이어를 마친 뒤 얻는 것도 다르지요. 하지만 공통의 경험은 자기다운 모습을 발견하고(아니 어쩌면 회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진로를 만들어 갈 힘과 희망, 힌트를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통해 그것을 얻을 수 있었냐는 질문에 꽃치너들이 입을 모아 한 대답은 '넉넉한 쉼' 그 자체(혼나지 않고 한없이 쓸데없는 짓 해볼 수 있는 시간)와 '꽃친이 만들어주는 사랑과 신뢰의 안전한 공동체'였다고 하네요.
혹시 꽃친을 통해 청소년들이 엄청나게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신 분이 있다면 약간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꽃친을 통해 아이들이 얻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대단한 것을 이루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자라다 보니 평범하게 건강하고 평범하게 행복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지, 그리고 얼마나 지켜내기 어려운지 간과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평범하게 고유하고 아름답기에, 성취 압박 속에 상처 받고 자책하고 무기력해진 청소년들에게 '나 자신으로도 괜찮다. 삶이 행복하고 살만하다.'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만 있다면 꽃친의 갭이어는 성공입니다. '쉼'이 '삶'을 제자리로 불러온 거니까요.
대학입시만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참고 사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으로서 마땅히 경험해야 할 삶을 산 친구들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요?
{마지막 4편으로 이어짐.}
*에릭 홈브루거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 인간의 전생애를 8단계의 발달과정으로 나누고 그 중 12~20세에 해당하는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을 자아정체감 형성으로 보았고 이것이 제대로 발달되지 못한 경우 정체감 혼미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ko.wikipedia.org/wiki/%EC%97%90%EB%A6%AD_%EC%97%90%EB%A6%AD%EC%8A%A8
이번 후원 캠페인은 1월 13일부터 설 명절 직전인 2월 10일까지 진행됩니다.
많은 참여와 소문내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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