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친동네 캠페인 특별기획 칼럼 #1]
❝ 청소년, 유예된 존재들 ❞
OECD국가 중 청소년 행복도 최하위권.
대한민국에 붙어 다닌 지 벌써 수년이 된 불명예스러운 딱지입니다. 함께 붙어 다니는 다른 딱지들도 있습니다. 과도한 학습 시간에 비해 낮은 학습 효율, 필수가 된 사교육(2019년 전체 청소년 중 74.8%가 참여), 수면 부족과 여가 시간 부족 등등. 이같은 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공개되었을 때는 나라 전체가 화들짝 놀라고 아주 심각한 사회 문제의 지표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매년 똑같은 결과가 반복될수록 모두가 조금씩 무감각 해져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제일 불행한 거 알겠어. 그런데 뭐 어떡하라고? 바꿀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버텨야 해.’라는 무기력과 무능력도 느껴집니다. 청소년들의 불행과 고통이 OECD 36개 나라 중 35위라는 숫자로만 남아 있을 뿐 그 고통을 체감하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고통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행복도 조사에서 매년 최하위권을 반복하는 만큼 점점 더 커지고 깊어지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우울증을 경험하는 청소년이 4명 중 1명입니다. 또한 청소년 3명 중에 1명은(33.8%) 자살을 가끔 또는 종종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원인으로는 학업을 가장 크게 꼽았습니다(37.2%). 주말에도 북적이는 학원가에서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고 다시 학원으로 들어가는 학생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 아이들 3명 중 1명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온 세상이 멈춘 상황에서도 청소년들이 해야 하는 공부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서도 진도는 나가야 했고, 시험은 봐야 했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학원이라도 다녀야 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우정을 쌓을 기회는 더 줄어들었고 나만 뒤쳐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은 더 커졌습니다. 개학이 계속 연기 되던 3월 말에 아예 모든 학기를 한 학기 씩 미루자는 이야기도 나왔었지만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됐더라면 아이들은 가을부터 1학기를 다시 시작하면 됐을테니 그 동안 만이라도 숨 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겪는 공포를 차분히 안정시키고 그 동안 공부하느라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사부작사부작 시작해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빠르게 달리는 학업이라는 기차에서 내릴 수 있는 청소년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엇을 향해 빠르게 달리는 기차입니까? 바로 대학입시입니다.
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 겨울. 이 겨울을 마음 편히 즐길 수 만은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수험생들입니다. 당락의 희비가 엇갈리고, 재수를 해야 하는 학생들은 부지런히 방법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설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지 못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실망감을 이겨내고 다시 도전 해야 하는 시간들이 쉽지는 않을 테니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정말 걱정되는 이들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초중고 12년을, 아니 어쩌면 20년 인생 전체를 대학 입시만을 위해서 살아왔고 그것을 얼떨결에 이루어 버린 학생들입니다.
중2병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말이 되었습니다만, 대2병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미 몇 년 전부터 화제가 되어 관련된 다큐멘터리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입시라는 관문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통과하여 대학생이 된 청년들이 첫 1년은 신나게 보내고 난 뒤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느닷없이 찾아오는 혼란, 우울함, 막막함이 대2병의 증상입니다. 학교가, 선생님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경쟁하고 시험 봐서 대학에 왔는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대학에는 왜 온 것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등, 물론 답을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청소년 시기에 최소한 고민이라도 해 봤어야 하는 질문들을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맞닥뜨립니다.
그럼 그때부터 고민하고 선택해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기 위해 멈춰서 본 경험도 없을 뿐더러,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준 사람도 없었습니다. 만약 고민 끝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도전해보고 싶은 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본 경험이 없는 어린 청년들에게는 선택이란 굉장히 두려운 일입니다. 이 과정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막막하고 부담스러우면 대2병이라는 말이 생겨 났을까요. 삶의 목적을 잃은 많은 청년들이 우울증에 빠지고 일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방황하기도 합니다.
무엇을 위한 포기인가요?
중고등학교 시절, 잠을 포기하고, 친구들과 추억과 우정을 쌓는 것을 포기하고, 나를 설레게 하는 다양한 관심사에 몰두해 보는 기회를 포기하고, 가족과의 여행을 포기하고, 친구들과 경쟁하고, 우울증을 견뎌내고, 죽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며 일주일에 70시간 씩 어른들의 노동 시간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시간을 입시 공부에만 쏟아 부었는데 그 결과가 대2병이라니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그 긴 시간 동안 행복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유예 되어야 했을까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어린 생명을 너무도 많이 잃어야만 했던 우리 사회는 지금 유예한 행복을 언젠가 맛볼 수 있는 미래는 누구에게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잃은 것은 세월호 아이들의 생명 뿐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 청년들이 조용히 죽어가는 것을 모른 채 하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가장 가까운 근처에도 유예된 행복을 결코 맞이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청소년, 청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울증, 중독, 가정 파괴 등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이 다가 아닙니다. 아이들 안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불안, 화, 조급함, 구분 짓기, 차별과 혐오 등은 오직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성적표에 들어가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아이들의 삶에서 삭제하고 지금 조금만 참으면 미래의 사회,경제적 안정이 너희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약속한 댓가로 아이들이, 아니 우리 사회가 얻은 것들입니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이런 사지로 내몰 수는 없습니다.
봄은 먼 들판에서부터 온다
교육 문제는 아주 크고 복잡합니다. 특히 우리 나라같은 공고한 학벌 사회에서는요. 결코 하나의 해법으로 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는 어떤 곳인지,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제도는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지 등 하나만 해도 아주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풀어나가야 할 굵직한 주제들이 여럿입니다. 하지만 ‘봄은 먼 들판에서부터 온다’는 쇠귀 신영복 선생님이 말이 있지요. 우리는 그 말을 믿으며 각자가 서 있는 먼 들판에서부터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의 실천으로 ‘잠시 쉬어가도 괜찮은’ 아니 ‘쉬어 가서 더 좋은’ 청소년 갭이어(1년의 방학)을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2편에서 이어짐.}
*참고자료 : ‘2020 청소년 통계’, 통계청, 여성가족부.
이번 후원 캠페인은 1월 13일부터 설 명절 직전인 2월 10일까지 진행됩니다.
많은 참여와 소문내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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