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후 올해처럼 홀가분하고 여유로운 추석 연휴가 있었나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오지 말라는 친정 부모님 요청이 있었으나,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모이게 되었고 각 가정이 가져온 일품요리로 간단히 식사했지요. 명절 음식 만드는 노동에서 해방되고 시간 여유가 생겨 어찌나 좋던지요.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시간으로서 추석을 보냈네요. '명절엔 다 같이 얼굴 마주하고 얘기 나눌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함'을 실감하면서요.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의 많은 것을 바꿔놨습니다. 가까운 미래조차 내다볼 수 없어 암울하고 경제적으로도 막막한 터널을 지나는 느낌입니다. 어린이집,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기관, 학생과 가정이 앓고 있는 몸살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올봄에 대학 신입생이 된 제 아들은 아직 캠퍼스에 가서 수업 한 번 못 들었고, 동기들을 직접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곧 후배들 입학 시즌이 다가온다며 헛웃음을 짓습니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코로나가 가져온 부정적 영향은 삶의 모든 영역에 두루 퍼져 있네요.
한편으론 앞서 명절 이야기처럼, 평소와 다르게 경험해봄으로써 진짜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되는 변화도 관찰합니다. 당연하던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자주 생기거든요.
과연 학교가 뭐야? 배운다는 건? 누가 친구지? 행복이란?
어쩔 수 없는 멈춤 앞에 서보니 그제야 늘 해오던 것의 의미가 궁금해지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코로나가 ‘의도하지 않은 불의의 멈춤’을 통해 정말 중요한 것을 톺아보도록 틈을 내주었습니다. 현재 활동 중인 5기 꽃치너들의 중심정서는 ‘그리움’입니다. 어렵게 대면 모임이 성사되면 서로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거든요. ‘사랑하는 우리, 왜 만날 수가 없는 거야’ 절절한 시간을 여러 차례 지나 오늘을 맞이했네요.
청소년 갭이어 꽃다운친구들은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멈춤’으로 자기다움을 찾아가기, 더불어 사는 법, 진짜 배움을 지향해왔습니다. ‘갭이어’를 검색창에 넣어보니 “미국의 한 입시전문가가 코로나 19 같은 감염병 창궐 땐 '갭이어' 추천한다"는 기사가 가장 위에 뜨네요. 또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열일곱 살 그레타 툰베리가 1년의 갭이어를 마치고 학교로 복귀했다고도 하구요. 우리 귀엔 아직 생경한데 틈새 휴식 ‘갭이어’는 이렇듯 어떤 나라에서는 문화로 자리 잡았나 봅니다. 우리나라에도 꽃치너 오십여 명의 갭이어 이야기가 다섯 해 동안 쌓여가는 중입니다. 조만간 이들을 무려 3년에 걸쳐 인터뷰한, ‘청소년의 쉼’ 연구 보고서가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낼 예정이에요. 일정이 잡히면 바로 초대장 보내드릴게요. 꽃.친.동.네 모든 분이 그리워지는 가을입니다.
덧.
퇴근길 버스 안에서, 긴 외출을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요.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라는 노래입니다. 자리를 빗나간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허겁지겁 뛰어온 아이들의 삶에 쉼이 더해져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면? 아, 정말 좋겠습니다.
- 꽃친쌤 이수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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